사목교서

✝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들과 수도자와 사제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를 빕니다.
저는 올해를 자비의 해로 선언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5년을 희망의 순례자들’ 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지 25년이 지난 까닭입니다우리는 ‘2025년 희년을 준비하고자 2024년을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고 묵상하는 한 해로 맞이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사실상 하느님의 자비로 태어났고또 살아가고 있습니다예수님이 들려주신 만 탈렌트의 비유는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무한한 자비를 암시해줍니다. “임금이 셈을 하기 시작하자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마태 18,24) 만 탈렌트는 어마어마한 액수입니다어느 신부님이 비교적 세밀하게 계산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당시 은화 1세켈은 4일치 품삯이었고금화 1세켈은 60일치 품삯에 해당하였다… 로마화폐로 환산하면 한 탈렌트는 노동자 6000일의 품삯이 된다대략 17년 임금이다.” 그러면 만 탈레트는 만 명에게 17년간 봉급을 줄 수 있는 액수의 돈입니다우리는 예수님이 너무 지나치게 과장해서 말씀하시는 것이라 여길지 모르지만엄밀하게 따지면 그 이상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이 우주가 생겨나고그 가운데 지구에서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기적의 신비입니다우주 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인간이 이런 지구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수차례의 계속적인 기적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그것을 과학적 용어로 미세조정 기본 상수라고 말합니다예컨대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아주 정밀한 질량이 아니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물리학 교수는 그 질량이 447,225,917,218,507,401,284,016g/cm3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1g만 넘어도 열린 우주가 되어 형성되지 않고또 1g이 모자라도 질량 부족으로 닫힌 우주가 되어 오늘날의 우주가 형성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그리고 그렇게 기적처럼 놀랍게 형성된 이 우주에서 지구에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미세하게 조율되어있는 기본 상수 30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가령 빛은 1초에 30만 Km(정확하게 299,792,458m/) 속도를 유지해야 하고중력 상수블츠만 상수 등이 30가지가 정확하게 그 조건을 유지해야만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지구가 된다고 합니다하느님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자들은 이런 기적을 두고 확률적으로 우연히라고 말합니다물컵 하나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우리에게 물컵보다 어마어마하게 정교하고 세밀하게 이루어진 이 우주가 우연히되었다는 그들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일은 기적입니다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태양풍적외선을 비롯한 우주선혜성을 비롯한 수많은 소행성들의 침범초신성에서 나오는 해로운 이물질들은 이 지구에 결정적인 타격을 줍니다그럼에도 지구가 45억년을 지탱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그 지구에서도 인류는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생존하고 있습니다그 사이에도 화산과 지진과 폭풍과 해일 등의 자연적인 재해뿐만 아니라인간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전쟁과 테러와 전염병을 비롯한 질병 등의 위협이 있고그 와중에 인류가 살아가고 있습니다인류의 생존은 그야말로 엄청난 기적을 요구합니다그밖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는 놀라운 기적이 많습니다세상 사람들은 이런 것을 이라고 합니다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곧 하느님의 자비입니다그런 까닭에 구약의 백성들은 시편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낮과 밤을 다스리도록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하느님의 자비를 노래합니다.(시편 135편 참조)

우리 자신들의 삶을 헤아려보아도 그렇습니다출생부터 성찰한다면 현재의 나의 존재는 기적의 결실곧 하느님의 자비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수많은 아버지의 정자 가운데 그 하나가 어떻게 내가 될 수 있었을까불교에서는 인간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는 공적을 세워야 한다고 말합니다그만큼 어렵고 놀라운 일이라는 것입니다우리의 일상 삶도 하느님 자비입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마태 6,26)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보호하며촉진하고 새롭게 만들며 재건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발터 카스퍼, ‘자비’ 107쪽 참조) 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아도부족함에도 사제가 되고주교로 임명되어 여러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 모든 행운은 철저하게 하느님의 자비입니다때로 아프기도 하고상처도 입고위기도 있었지만 치유되고회복되고고비를 넘겼습니다같은 죄를 수없이 반복해서 고백했지만 그럴 때마다 용서도 받았습니다날마다 은총이요 자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우리들은 당연히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예수님의 비유가 그것을 강조합니다. “이 악한 종아!….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이는 만 탈렌트를 임금으로부터 탕감받은 사람이 500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독촉하여 감옥에 넣고 빚을 갚으라고 한 사실에 분노하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우리들에게 진지한 성찰을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시편 136편에서처럼 하느님의 영원한 자비를 노래합시다.
그리고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풉시다.

주님의 은총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평화와 기쁨과 건강을 기도합니다.

찬미예수님,
 

사랑하는 교우수도자사제 여러분!
새해도 주님께 희망하며 한 해를 시작합시다올해를 행복의 해로 선언합니다그간 우리는 하느님께 드려야 할 우리의 덕목으로서 믿음희망사랑을 묵상하였습니다또한 신··애 삼덕을 위한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행동지침기도와 자선과 절제를 살고자 했습니다올해부터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언하신 행복을 묵상하고그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은 우리의 행복입니다예수님은 우리의 행복을 하느님 나라로 표현하셨습니다그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을 당신의 사명으로 여기셨습니다. “나는 다른 고을에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루카 4,43)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일은 제자들의 사명이기도 했습니다예수님은 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제자들을 뽑고파견하셨습니다제자들을 둘씩 짝 지워 파견하시며 명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전하여라.”(루카 10,11) 사실 예수님이 세우신 우리 교회의 사명도 다르지 않습니다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곧 행복할 수 있도록 땅 끝까지세상 끝날까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모든 사람들이 가장 우선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입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마실까무엇을 입을까걱정하지 말아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그 나머지는 덤으로 주실 것이다.”(마태 6,25-33 참조이 말씀은 당시 상황을 파악하지 않으면 알아듣기 어렵습니다가난했던 사람들에게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던 그들에게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물론 예수님이 가난한 청중들의 처지를 전혀 모르거나그들의 처지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청중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였기 때문입니다항상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말씀하셨습니다농부들을 위해서 씨앗이나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를어부들을 위해서 그물의 비유를장사꾼들을 위하여 값진 진주의 비유를그리고 집안의 아낙네들을 위하여 누룩의 비유를 드셨습니다그러므로 이 말씀은 의식주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느님 나라가 훨씬 더 가치가 있고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여러 가지 낱말로 표현됩니다그리스도교는 그것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불교에서는 극락왕생이라고 합니다성경에서는 천국’, 교부들은 지복직관’, 심리학자들은 자아실현’, 또는 자아완성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예수님은 그 행복’, 그 구원을 하느님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즉 예수님에게 하느님 나라는 행복의 완전체’, ‘행복의 완성입니다예수님은 이 행복의 나라를 위한 가족관계를 새롭게 설정하였습니다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라고 반문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9-50) 그리고 하느님 나라로 가는 길을 여덟 가지로 제시하셨습니다그것이 바로 산상설교의 진복팔단입니다이 진복팔단은 하느님 나라의 대헌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구약에서는 십계명이라면신약에서는 진복팔단입니다.
 

우선 그 첫 번째가 마음의 가난입니다. “행복하여라마음이 가난한 사람들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선언에 대해 의아해 합니다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 알아듣지 못합니다그래도 알아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결국 그분의 말씀이 옳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돈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세상의 흐름과 역행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더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예수님의 말씀은 행복의 조건은 돈이나 재물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고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실제로 그렇습니다스티브 잡스나 많은 부호들이 유언으로 남긴 글에서도 돈이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는 걸 알려줍니다. “…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 만을 남긴다…”(스티브 잡스)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마음의 가난을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루카 복음의 가난을 마태오 복음은 마음의 가난으로 표현하였습니다히브리어 아나뷤을 해석하는데 차이를 보인 듯합니다. ‘아나뷤은 주님의 가난한 사람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그들이 가난했던 이유는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이 아닙니다하느님 때문에하느님을 믿는 신앙 때문입니다예를 들면 바빌론 땅에 강제로 이주하게 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곳 환경과 생활 습관에 적응해야 했습니다그렇게 하자면 이스라엘 신앙 전통이나 습관을 포기해야 합니다이스라엘의 신앙과 전통과 습관을 지키려면그곳에서는 이방인이 되고부유하게 살 수 없습니다마치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 교민들이 우리와 다른 습관과 생활양식과 행동방식을 지닌 그들 속에서 우리 것만을 좋은 것으로 고집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경쟁할 수 없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훗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이스라엘을 재건한 사람들은 아나뷤들 이었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부자들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게으름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가난한 이들을 헤아립니다.
가난한 마음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비롭습니다.
가난한 마음은 아주 작은 것으로도 행복을 느낍니다.
가난한 마음에는 하느님이 계실 곳이 넉넉합니다바로 그런 까닭에 가난한 마음에 하느님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는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보물이 묻힌 밭을 발견한 기쁨 그 이상을 누릴 수 있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새들의 보금자리보다 더 아늑한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유혹이 스며들 수 없는 곳이요악으로부터 보호되는 곳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전부가 되는 곳입니다바로 그런 까닭에 행복은 가난한 마음에 자리합니다.
 

사랑하는 원주교구 교우수도자사제 여러분!
올해는 가난한 마음으로 하느님께서 선사하시는 행복을 맛봅시다하느님의 은총을 기도합니다.

2023년 12월 대림 첫 주에
천주교 원주교구 조규만 바실리오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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